일상&주간일기

선물 같은 20220831 : 수원시립미술관 호피폴라 홍진호, 넷플릭스 로스쿨

Ah.kive 2022. 9. 1. 01:44

수원시립미술관에 온 호피폴라의 첼리스트 홍진호와 재즈 피아니스트 조윤성, 이틀만에 정주행 마친 넷플릭스 법조물 드라마 로스쿨 후기까지.
가끔은 길게 기록하고 싶은 하루가 있는데 불완전한 필름들이 이어져 완벽한 선물 같았던 하루의 일기.

날씨가 너무 가을 같아서 무척 센치하고 가을 타는 글이 될 것 같음.
낯을 고려하면 탈고해야 하겠지만 귀찮으니까 일단 공개하고 갑자기 부끄러움이 몰려오면 비공개로 돌리겠습니다…


2시 반쯤 수원시립미술관에서 올린 게시글을 봤다. 홍진호가 3시 공연을 위해 리허설 중이라고.
집 근처에 연예인들이 촬영 온다 해도 집에 있길 고수했던 내가 나간 이유가 뭐였을까. 코 앞에 연예인이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굳이 길을 돌아 갔는데.
공연을 하는 수원시립미술관이 집에서 가까웠고
오늘은 마침 재택이었고,
미팅이 없어서 자리를 비워도 티가 나지 않을 것 같았고,
슈퍼밴드1 당시 호피폴라를 응원했고,
나는 음악을 좋아하고.
그냥이라고 대답하고 싶었는데 살펴보니 여러 복합적인 이유들이 있었다. 가길 잘했다.


첼리스트 홍진호를 보러 갔는데 역시 나는 첼로보단 피아노 쪽이 훨씬 끌리는걸..?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졌다. 이 마음이 얼마나 오래 갈지는 모르겠지만 무엇인가 시작하고 싶은 마음을 얻어서 행복했다.
남들은 연주를 듣기 여념 없었지만 저는… 아무리 재택이라도 오늘까지 제출해야 할 일이 있으므로 혼자 노트북 키보드를 열심히 두드렸습니다. 취향인 - 아닌 음악들도 섞여 있었지만 - 음악을 들으며 일한다는게 너무 기분 좋은 일이었다. 매일이 오늘같은 분위기라면 일하는게 즐거울 텐데!


첼리스트 홍진호의 발과… 빤딱빤딱하게 닦은 그랜드 피아노에 비친 나의 모습…
솔직히 내가 나올 거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되게 나같다! 생각하면서 확대하니까 진짜 나였음.

SUMA 뮤지엄데이, 홍진호, 조윤성의 뮤직 토크 플레이리스트


SUMA 뮤지엄데이, <홍진호, 조윤성의 뮤직 토크> 플레이리스트
1. 홍진호, 꽃핀다
2. 홍진호, 그때는 우리가
3. 에코브릿지, 꽃이 진다
4. Ludovico Einaudi, Passagio
5. Olafur Arnarlds, Uudan Hulu
6. Kenny Dorham, Blue Bossa : 보사노바 너무 좋아
7. Antonio Carlos Jobim, Corcovado
8. Pablo Zlegler, Flor de Lino
9. Charles Chaplin, Smile
10. Richard Rodgers, My favorite things
11. A. Piazolla, Verano Porteno : 피아졸라는 늘 나를 실망시킨 적 없음

@suwon.museum.of.art, 수원시립미술관 인스타그램 계정


혼자 노트북 켜놓고 음악 듣는 저.. 소파에 앉은 까만 머리가 저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렇게 잘 나온 사진이 있을 줄 몰랐는데, 수원시립미술관 감사해요…

행궁동 미술관옆화장실, 조형물


점심 무렵 살짝 비가 내렸는데, 저녁이 다가오면서 싹 갰다. 코로나 확진 이후로 행궁동도 무척 오랜만이다.
수원시립미술관 후문 쪽에 있는 미술관옆화장실 앞에 이런 조형물들을 설치해 두었더라. 밤에 보면 더 예뻤을 텐데. 분명 이걸 보면서 저녁에 R이랑 와야지! 생각했지만 금세 까먹었다. 기억력 감퇴도 아무튼 코로나 탓이야.

행궁동 카페 우인의 3층 테라스 뷰


종종 책을 들고 갔던 카페 우인 3층의 테라스뷰는 언제 봐도 예쁘다. 장안문 뷰만 고려하면 옆에 있는 정지영 커피 로스터즈가 낫지만, 나는 우인이 더 좋다.
화장실도 더 좋고, 자리도 좀 더 편하고, 덜 협소한 장소가 아주 마음에 든다. 그리고 정지영 커피 로스터즈 계단 폭이 너무 좁게 설계돼 있어서 불안불안함!!!


R이 무슨 연애하는 것처럼 사진 찍냐고 그랬다. 그런가..? 잘 모르겠다.


R이 마음에 든다고 했던 사진. 화장기 거의 없는 얼굴에 옆모습이 괜히 어색하다. 늘 타인이 찍어주는 사진을 보면 내가 이렇게 생겼나? 이 사람이 보는 나는 이런 얼굴이려나 그런 생각을 한다. 우리는 몇 개의 얼굴을 가지고 사는가.


R에게 받은 깜짝 선물! 나는 선물이 좋다. 누군가 나를 생각해준 시간이 좋고 너무 고맙다.
7월에 R에게 건넸던 별 거 아닌 편지는 돌고 돌아 이렇게 돌아왔다. 나는 그동안 R에게 두 번의 편지를 받았다. 오늘까지 세 번인가.
R에게 언니라는 위치가 주는 느낌은 무엇이기에 그런 얼굴과 그런 말투로 말을 할까, 모두에게 똑같은 얼굴을 가지는건 역시 생각보다 어렵다. 나도 대상에 따라 여러 개의 가면 중 가장 잘 어울리는 걸 골라 쓰곤 하니까!
나를 왜 멋있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안 멋있다고 할 수는 없어서 그렇게 적었다고 너스레 떨었지만 실은 내 별볼일 없는 인성이 뽀록날까봐 살짝 걱정된다.

R은 언제쯤 말을 놓을까?
일방적인 반말이 불편해서 R에게 말을 놓았다가 다시 존댓말로 돌아갔다. 이게 거리감을 초래하는 것 같기도 한데, R 읽고 있다면 어떻게 생각해?



집에 와서 이렇게 붙여 두었다. 여름이 다 갔는데 여름이 듬뿍 느껴지는 벽이라니. 가을이 오면 새로운 엽서들로 조합을 바꿔봐야지.
아까 말 못했는데, 색감이 강하게 들어간 분홍색의 엽서는 언니들에게 보여주는 다정함이라면,
내가 예측하는 R은 저 쓸쓸한 노이즈의 여름과 비슷한 이미지다.
나는 두 조각을 읽었다. 앞으로 몇 조각을 더 발견할 수 있을지는 내게 달렸겠지…?

넷플릭스, 로스쿨 이미지


삼일만에 로스쿨 정주행 끝냈다. 표절 논란이 있어서 보지 않으려고 했는데요..? 논란이 일었던 원작 how to get away with murder를 내가 정말 정말 재밌게 봤기 때문에 의리를 지키고 싶었다고 할까..? 근데 넷플릭스 ‘파트너 트랙’을 보고서 법조물을 하나씩 찾아보려고 하니 로스쿨이 눈에 밟혔다. 개인적으로는 하나의 중심 사건을 16화까지 이끌어가는 과정이 지루하다고 느꼈지만 그게 중요한게 아님.

이거 보고 류혜영과 김범한테 빠졌다.
응답하라를 안 봐서 류혜영의 연기를 보는 건 처음이었는데 너무! 너무 귀엽더라… 솔A도 귀여웠지만 나는 역시 김범!
이제 와 밝히는 건데 남들 다 구준표 멋있다고 할 때도 난 굳건히 소이정이었다; 김범이 나오는 드라마나 영화를 찾아본 적은 없지만 나한테는 거침없이 하이킥의 김범보다 꽃보다 남자의 인상이 훨씬 강했다.
능글거리고 담백한 사람을 좋아하는 나의 뚝심. 로스쿨에 등장하는 한준휘 캐릭터도 그런 느낌이었다. 분명하게 러브라인을 밝히진 않지만 뉘앙스로 알 수 있는 솔A와의 러브라인도 좋았고, 아니 그냥 한준휘가 좋았다. 드라마는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그려지니 더더욱 모르는 척과 아는 척을 적절히 조절하는 한준휘의 캐릭터가 돋보였다. 모든 연기는 계산이었겠지만, 김범이 그려내는 한준휘 캐릭터는 내가 아주 좋아하는 성격이고 닮고 싶다.
크게 쌍커풀 진 눈도 웃을 때 보조개도 길고 날렵한 얼굴형도.


이런 여우와 강아지 사이에 있는 얼굴 너무 좋아. 오래 안 갈 관심, 불씨가 사그라지기 전에 후딱 봐야지.
X는 축 처진 눈꼬리며 김범이랑 닮은게 하나도 없는데. 역시 이상형은 그냥 이상형일 뿐인가…?
아니 이렇게 생긴 사람이 길거리에 돌아다닐 리가 없으니까 못 만나는게 아닐까

8월은 코로나로 기억에 남는 순간이 없는 줄 알았는데,
3:0으로 이긴 수원FCW와
코로나가 앗아간 날씨 좋은 주말과 연차^^
조금씩 불완전했지만 이어놓고 보니 완벽하게 연출된 8월의 마지막 선물
세 개나 기억할 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