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3일 : 한 달만에 출근하기
같은 8시 출근인데 난 심지어 머리도 밤에 감는 사람이라고요.
사실 5시에 일어나서 아침 일기 쓴다고 좀 바쁜 걸 감안하면 내 출근 준비 시간은 약 30~40분 정도다.
직장인 출근룩? 셔츠에 슬랙스 돌려 입기라 전 날 셔츠만 다려놓고 대충 입고 나간다.
출근에 시간 쓰면 일 효율 안 나와...
그치만 너무 출근하기 싫고 정말 출근 싫다.
자기 전에 한숨 팍팍 쉬면서 회사 갈 생각에 암담한 나.
아니 풀재택 돌려주면 얼마나 좋아. 님들도 회사 월세 내지 말고 걍 공유 오피스 써주세요...
오늘은 칼같이 버스도 타고 시간 맞춰서 지하철도 탔다. 수원에서 신사까지 1시간 10분만에 주파한다? 완전 기적 같은 일. 7시 반에 도착해서 오레오 하나 뜯어먹고 8시까지는 자유 시간!
오늘 무슨 일 할지 대충 끄적이고 나서 숙제하기. 글쓰기 좋은데 재능이 없나봐. 그나마 위안 삼을 수 있는 거라면 글쓰기는 못해도... 아니 못하면 속상한 건 모든 일에 통용되는 이야기다. 못하는 나를 견딜 관용을 배우고 싶다. 아직 어른이 되긴 글렀나.
오늘의 점심은 비빔밥 맛은 그저 그랬다. 돌솥 먹을 걸 그랬나?
비빔밥 가격 만 원. 진짜 너무 비싼 거 아니야? 생각했다가 요즘 시금치 한 단에 4천 원하는 걸 생각하면 납득이 간다. 출퇴근하면 식대도 정말 무시 못한다! 그러니까 재택하게 해주세요
아. 벚꽃 카페였나 알바가 잘생겼다!
동기 L님이 건강 챙기라고 오쏘몰 주셨다.
으으음~~~ 이래서 내가 덜 피곤했나? 그런데 이걸 먹을 사람은 내가 아니라 당신이었어야 해..
건강 챙기라고 오쏘몰 주고 퇴근하면 맥주 마시자는 L님. 한 번도 예외 없이 출근하면 같이 술 마셨다.
맥주 두 잔은 소셜 드링킹... 취기도 안 돌고 그냥 시간 보내고 수다만 떨어서 괜히 헤어질 쯤 아쉽다. 자고로 술자리라면 취기 살짝 돌아서 행복해야 하는 것 아니에요?
안주는 버터오징어땅콩이랑 테라 하나, 그리고 코젤다크 하나! 천 원 추가하면 초코 스트로우도 꽂아 준다고 했지만 이미 설탕까지 뿌린 코젤 다크에 초코 스트로우는 과한 것 같다. 그래서 그냥 기본으로 시킴!
역시 코젤 좋아. 코젤이 아니고 그냥 설탕이 더 좋아.
에일은 싫다. IPA 정말 싫어. 술에서 꽃향, 과일향 나는 건 참을 수 없다. 좋아하는 술도 스텔라(근데 최근에 먹어보니 좀 밍밍해서 별로였다), 코젤 다크, 맥스(맥스가 달다고 하면 아무도 안 믿는데 맥스 존맛 술임. 진짜 친구끼리 블라인드 맥주 시음회 꼭 해보세요)
내가 스무살 때 친구랑 객기로 했던 것 중에 가장 재밌었던게 블라인드 맥주 시음회였다. 처음에는 조금씩 구별하다가 점점 취해서 마시기 바빴던 기억.
신사에서 놀고 사당으로 가서 버스 환승해야 하는데, 넋 놓고 있다가 양재에서 버스를 탔다. 좌석버스 입석이 금지된 이후 버스(잔여 xx석)이라는 간판에 민감하게 굴고 있다. 언제쯤 출퇴근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집에서 일한다면 나을까 싶었는데, 가까운 건 편하겠지만 못할 것 같다. 방이 너저분해서 집중이 안 돼.
9월 14일 : 숙제는 일찍 합시다!
14일까지 제출해야 하는 숙제를 10시 반 언저리에 보냈다. 미리미리 했어야 했는데, 왜 그렇게 노는게 재밌었을까? 나는 자기관리를 잘하는 편은 아니다. 내가 가장 먼저 포기하는 건 취미, 커리어. 사람을 만나면서 자기 자신을 또렷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는가하는 반면 나같은 사람은 나를 가장 먼저 던진다. 그러니까 사람을 적당히 만났어야 했다.
내가 하고 싶은 머리는 송혜교였다. 얼굴이 송혜교인 거지만 저런 머리가 나한테 잘 어울린다는 것 정도는 아니까... 근데... 라이언킹 같다. 가뜩이나 숱도 많고 머리도 굵은 편인데 무게감이 없다 보니 방실방실 떠다닌다. 에휴!
머리를 자를 때만 해도 신 나기만 했는데 자르고 집 들어와서 보니까 너무 우울했다. 그리고 왜인지 미용실만 다녀오면 그렇게 피곤해서 10시 반부터 잤다. 미용실 탓인지 아니면 머리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둘다인지 모르겠다.
9월 17일 : 탈고와 코인노래방에 미친 사람
오늘도 코인노래방에 간다. 5천 원으로 두 시간을 놀 수 있으면 이렇게 가성비 좋은 놀이가 없다. 이전 두 차례 노래방 갔을 때보다 노래를 조금 더 부르게 되었다. 잘 부르는 건 아닌데 다른 형용사를 찾을 수가 없군.
확실히 나는 악보를 보면서 노래하는게 훨씬 편했다. 그나마 노래를 알 것만 같았다. 사람들은 보통 음악을 흘려 듣지 않나? 몰입하는 경험이 있어야 우리는 그 행동을 따라할 수 있게 되는데, 나에게 노래는 몰입을 도와주는 매개체일 뿐이다. 노래 자체로 빠졌던 날이 너무 오래다. 그 동안 음악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제대로 부를 수 있는 곡이 하나도 없다니, 단 한 번도 음악을 즐긴 적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9월 18일 : 마지막 글쓰기 수업과 산책
구절초를 닮은 꽃들이 성벽 아래에 자라는게 너무 예뻤다. 더 많은 사물들과 사람들의 이름을 알고 싶다. 그리고 이름으로 불러주고 싶다. 나는 사람의 얼굴도, 이름도 아주 어렵게 기억하는 사람인데 남들에게 관심이 그만큼의 관심이 없어서다. 나와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정말 쉽지 않다.
날씨가 좋은 행궁. 사람도 무척 많지만 약간은 익숙해졌다.
나는 두 번째, 이들에게는 세 번째 만남이었다. 한 손으로 손꼽을 수 있는 만남이 깊은 인상을 주는 이유는 뭘까? 더 많은 시간을 공유한 사람들은 일상에서 문득 떠올릴 순간이 많다. 아주 적은 시간을 함께했지만 기억에 남는 사람들이 떠오르는 순간은 강렬하다. 누군가에게 떠올려지는 존재가 되고 싶다. 그 사람이 내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E가 가끔 나를 재밌는 사람으로 기억해주면 좋겠다.
시선을 받는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누가 나를 진득하게 쳐다보는게 어색하다. 동등하다고 여겨지지 않을 때는 심지어 시선이 부담스럽다 못해 무서울 지경이다.
마지막 수업이라 그런지, 작가님께서는 여러분들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책들을 한 권씩 골랐다며 선물해주셨다. 제목을 보자마자 혹시, 내가 글을 느끼하게 쓰나 싶었지만 그렇다한들 그게 내 글의 특징인 걸 어쩌겠나. 자세한 글쓰기 수업에 대한 감상은 새로운 글을 파서 적어야지.
비평 받은 준비가 안된 사람이었고 글을 내지 못할 사람 같아서 하기 싫었다가 또 누군가의 칭찬 한 마디에 사르르 다시 글 쓰게 만드는 이상한 모임이었다.
누가 날 위해 골라준 책은 오랜만이다. 보통 책 많이 읽는 사람이 없기도 하거니와 책 좀 읽는 친구들은 선물로 책은 잘 안 고른다. 취향의 영역이고 가늠하기가 좀 애매한 구석이 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받는 책 선물은 오랜만인데 기분이 좋았다. 나라면 사지 않았을 책을 나라서 샀다는 이상한 말에서 내가 보는 나와 타인이 보는 나의 간극을 느꼈다.
기분 좋아서도 맞고 하루 만 보 걷기(2일째)라 부지런히 나가서 걸었다. 날씨가 좋았고(미화됨, 사실 개습하고 더웠음) 바람 냄새가 좋았다. 오랜만에 보는 공원의 분수쇼도 좋았다. 누군가를 만난 것보다 더 치열하게 보내고 한겹 한겹 만족스러운 경험이 쌓인 하루였다.
하루의 마무리는 구스구스덕. 게임 안 좋아하는 나고 잘 못하지만 재밌고 억울했다. 나는 거위인데;; 오리가 자꾸 자기 살겠다고 나를 오리 취급했다. 근데 또 나를 아무도 안 믿어줘. 정치질에는 소질이 없었고 억울함만 잔뜩 생김.
일기는 미루면 생각이 또 안 난다. 부지런히 밀리지 말고 써야지.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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