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주간일기

추석 일기 : 갱년기 아빠 놀아주기, 행궁동 술집 심금

Ah.kive 2022. 9. 15. 00:08

9월 9일 : 방청소와 갱년기 아빠와의 데이트

엽서로 벽꾸(벽꾸미기)

연휴는 방청소로 시작해봅니다. 그림과 엽서와 메모가 붙어있던 벽을 새롭게 단장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이자 친구의 작품(크레파스로 어떻게 이런 그림을 그리지????) R이 선물한 엽서. 가을 맞이 아니고 완전 봄봄이다.

스킨답서스

몬스터 스킨답서스. 흙만 있으면 무한정으로 자란다. 그 혹시 식물을 들이고 싶은데 막 자랐으면 좋겠다면 저에게 넌지시 말해주세요. 스킨답서스 흙에 심어서 드립니다. 스킨답서스 저 모체 화분에 예쁘게 분갈이하는게 목표인데 자라는 속도 > 마디 자르는 속도임

데일리 콤마 데일리 파이브

디퓨저가 집에 남길래 뜯었다.
데일리 콤마의 데일리 파이브! 그냥 무난한 향이다. 파우더리하고 나 사실 향 잘 못 맡아서 설명은 못하겠네...

디퓨저 디피하기

디퓨저 스티커는 떼고 손바느질한 커버 씌워주기. 처음에는 발향이 강해서 리드 하나만 꽂아둔다. 남은 디퓨저만 다 쓰면 당분간 디퓨저 안 살 듯. 향기롭긴 한데 인공적인 향이 부담스러워졌다. 그리고 향초도 많아서 죽을 때까지 다 못 피울 것 같기도 하다. 아니다. 바디로션을 좀 더 자주 바르는게 좋겠어. 내가 좋아하는 문라이트패쓰랑 롤리타렘피카가 찰떡인 계절이 됐잖아. 달달한 꽃향은 호불호가 많이 갈리지만 난 너무 좋아!

만두

석조전 가기 전 점심으로 비빔국수와 만두를 먹었다.

나는 만두가 넘 조아. 내 별명 중 하나는 만두땃쥐인데 만두를 진짜 맨날 먹어서 그렇다. 한창 만두 먹을 때는 그냥 보름 내내 만두만 먹었다. 요즘 안 먹었는데 다시 먹으려고 샀다. 내가 좋아하는 만두는 담두 고기 만두랑 풀무원 얇은피 김치. 깍두기 좀 큼직하게 썰어줄 때가 더 맛있었는데 좀 아쉽다.

지하철 손잡이

아빠가 차 많이 막힐 것 같다고 지하철 타고 가자길래 그래! 했는데 진짜 좋은 선택이었다.
손잡이의 틀어진 스프링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저 사람들은 어떤 관계였을까 연인 사이에 하나씩 손잡이를 잡고 서로를 보며 이야기를 나눴을까, 아니면 어느 출근하는 직장인이 너무 힘들어서 양손에 꽉 쥐고 있었던 걸까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진은 없지만 버스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아빠는 버스도 지하철도 10년만이라고 했다. 집 앞 은행도 차 타고 다니는 양반이 차 있으면 고행길인 서울을 갈 이유가 없지. 나이 들어서 이런데(경복궁, 덕수궁)은 안 오게 된다며 신기해했다. 아빠는 고목을 좋아하나보다. 그리고 내년 봄에는 아빠랑 벚꽃 구경을 한 번은 가지 않을까.

덕수궁 풍경

날씨 정말 좋은 덕수궁~ 도시와 조선시대의 목조 건물, 자연이 한 프레임에 담겨서 좋다.
내가 좋아하는 덕수궁!

아빠한테 나는 적송 싫다고 하니까 적송 예쁘다고, 적송이 비싼 거라고 했다. 비싼게 중요한게 아니라고 아빠! 나는 적송이 싫어! 그리고 한국 회화에서 표현하는 적송에서 '적'만 강조한 붉은 안료도 마음에 안 든다. 투박하고 붉으죽죽한게 장승 귀신 같다.

덕수궁 석조전

석조전은 언제 봐도 예쁘다. 아빠는 현대식 석조 건물에는 매력을 못 느끼더라. 자꾸 오래된 나무 타령 하길래 그럴거면 노송지대 가라고 했다. 날도 더워 죽겠는데 불평 그만해! 
사진으로 보니까 이게 기둥식 구조구나. 확 알 수 있다. 신전 같아서 나는 좋기만 하다. 우상 숭배할 대상도 없고 신도 안 믿지만 대칭과 평형, 균형에서 오는 편안함이 있다. 그리고 화려함도 좋고!  

문신의 필체

문신의 필체가 좋다. 또박또박 쓴 ㄹ과 삐침이 살아있는 ㅁ, 흘림 없는 ㅂ과 정반대의 녹아내리는 ㅍ. 작은 눈송이 같은 ㅇ까지 사랑스럽게 보이면 좀 이상한가? 자간도 행간도 아주 좁디 좁고 띄어쓰기도 제대로 되지 않은. 그러니까 한글을 마치 한자 쓰듯 꼭꼭 붙여 쓴 문신의 글씨가 어린아이의 낙서같다가도 쓰는 단어를 보면 어른 같아서 묘하게 좋다.

오래된 저 시대에서는 한자와 한글을 같이 썼다. 한글은 누구보다 수월하게 읽는 내가 한글이 섞인 옛 글은 남의 나라 말 읽는 것처럼 더듬더듬 읽어내는 기분은 어색하다.

문신 <소>

직선적이고 형태를 단순화한 그림은 이해 잘 못한다. 그래서 추상화도 좋아하진 않는다. 근데 또 유영국의 붉은 산은 좋아한다.
문신의 소도 뼈대가 살아 있는 의미 위주의 선 사이에 힘찬 소 꼬리로 자꾸 시선이 간다. 소꼬리에서부터 어지러운 하늘로 갔다가 큰 소의 오장육부를 훑고 어린 소의 요상한 내장 보게 된다. 단단하고 힘 있는 선 원래 안 좋아했던 것 같은데 올곧은 심지처럼 보여서 안정감이 든다.

문신 <닭장> 닭장 맞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봤던 것 같다. 전시를 조금 보러 다니면서 스스로 뿌듯한 순간이 이럴 때다. 어! 나 이 작가 아는데! 어 나 이 그림 다른 전시에서 봤는데! 어! 이 작가 특색이 이런 거였구나? 하고 깨달을 때다.
네이버 블로그에 이거 본 감상을 길게 적었던 것 같은데, 그 때도 이 내용을 적은 것 같다. 저 새벽같은 파란 하늘 색이 희한하다고 말야. 정오의 뜨거운 햇볕과 어둑한 하늘색이 어색했다. 저 시대의 하늘은 저랬을까 싶기도 하고

청동이 좋다. 대칭 같지만 미묘한 비대칭의 조형물로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나는 모르겠다. 조소나 설치미술보다는 회화가 그나마 이해하기 쉬운건 내가 미술 쪼무래기라 그렇겠지. 언젠간 잘 이해하게 되면 그 때 더 잘 보면 되니까.
청동은입사정병도 좋아한다...^^ 은입사 너무 예뻐. 청동이 가진 오묘한 색이 좋다. 녹슨 청동검 색은 투박하고 삭은 느낌만 나는데 녹빛 잔뜩 도는 청동이 좋아!유약 발라서 구워 색이 오래 유지되는 건가?

덕수궁의 묘미는 뭐니뭐니해도 분수. 가을의 덕수궁은 정말 낭만이 가득하다. 은행잎이 떨어질 때 또 가야지.
내 유튜브 계정에는 내가 올린 영상이 몇 개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가을의 덕수궁이다. 몇 초 남짓 안 되는 짧은 시간을 돌려볼 만큼 그냥 너무 좋다. 무턱대고 생각없이 간 덕수궁도, 날씨 좋은 가을 하늘도!

신발 밑창이 닳은 줄도 몰랐다. 발바닥이 아프면 아픈 대로 신다가 이 날은 웃으며 견디지 못할 만큼 짜증이 났다. 바보 같아. 기분이 나쁜게 아니고 발이 불편했던 건데 그렇게 화가 났다. 집에 오자마자 바로 버렸다. 발이 불편하다고 화내고 싶지 않았다.

수국의 무덤

9월은 내가 좋아하는 계절인데 여름 꽃들에게는 좋지만은 않을 계절이었다. 수국의 무덤을 보는 기분이 묘했다. 다시 필 꽃을 보며 무덤을 떠올린 것도 제법 소름 끼치게 들리지만 가여웠다.
하드메탈 들으면서 죽어가는 꽃에 경의를 표하다니 묘한 일이야

9월 10일 : 컴포즈 커피와 와플

컴포즈커피 사과생크림와플 2500원

친구랑 컴포즈 커피 가서 와플 먹었다. 얇은 와플에 사과쨈과 생크림은 언제 먹어도 너무 맛있다. 옛날에 중상에서 팔았었는데 기억 하려나?
돌고 돌아 기본이라고 사실 왕플도 한 때 유행했지만 그렇게 두껍게 토핑 올라간 건 먹기가 힘들다. 점점 더 실용적인게 좋다.

베트남 consoc 커피


친구한테 받은 베트남 다람쥐똥 커피~~ 박스도 너무 예쁘다. 정제설탕인지 알굵기가 제각각이었는데 달지 않아서 한 포 다 털어넣고 마셨다. 음~ 맛있어! 

친구가 1월에 같이 베트남 여행 가자고 했다. 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가고 싶다. 그리고 진짜 영어 공부 해서 해외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반짝반짝 든다. 

 

9월 11일 : 코인노래방과 행궁동 술집, 심금

인스타 스토리에 코노 영상을 올리던 C의 영향으로 코노에 갔다. 코노라이팅 효과로 이틀 동안 5시간 노래 불렀다. 그 때 불렀던 노래들도 지금은 키를 낮춰야 부를 수 있다는게 조금 속상했다(지휘자 선생님께서 내가 예쁜 톤은 알토라고 했던게 이런 의미였나?)
조금만 질러도 삑사리 나는 목이 좀 돌아오면 다시 코인노래방에 가야지. 플레이리스트 또 짜야 된다.

*세븐스타 코인노래방*
만원 47곡 / 5천원 22곡 -계좌이체만 가능, 카드X
현금 장사하기에는 코인노래방도 괜찮아 보인다.

행궁동 술집, 심금

행궁동에 생긴지 얼마 안 된 술집 심금.
사람이 정말 많았다. 인테리어를 옛날 한국식으로 했

고구마통통 막걸리 진짜 맛있다. 백제신라고구마 녹여서 막걸리 탄 맛.
이 날 3명이서 만났는데 하나도 안 취하고 다들 멀쩡하게 귀가했다. 초코우유도 마셨는데 마실 필요가 없을 정도로 그냥 멀쩡했다.
취할 때까지 마시는게 좋았는데 요즘은 소셜 드링킹 목적으로 마시게 되는 것 같다. 내가 바라던 바였으니까 아주 만족한다. 이 날 주로 했던 얘기는 결혼하면 가만 안 둔다는 거였다. 아무도 결혼하지 말고 종종 만나서 술 마시자 얘들아 제발. 17살 때 처음 봤으니 이제 햇수로 10년이 됐다. 10년을 내리 꼬박 만난 친구도 있고, 아닌 친구도 있는데 다들 서서히 어릴 때의 치기와 자기만의 개성보다 하하호호 넘길 줄 아는 어른들이 되어갔다. 난 여전히 애같은데 친구들은 멋있어졌다. 좋았다. 나의 가장 예민한 학창시절을 본 사람들이기에 꾸밈없이 편하게 대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내가 짱 좋아하는 언니가 난 단발이라고 했다. 내가 보기에 이 언니야말로 뭘해도 걍 걍 레전드다. 나 입학하고 언니 처음 봤을 때(그 때는 선배였음) 세상에서 제일 예쁜 사람 본 기분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왜 데뷔를 안 하지? 
이상하지 어떤 사람은 넌 긴 머리가 낫다 하고 또 누군 단발이 낫다 한다. 긴 머리 오래 했으니까 오랜만에 자르기로 했다. 원래는 숏컷하고 싶었는데 도저히 미용실에 자주 갈 자신이 없다. 3년은 긴 머리로 살았으니 다시 단발로 돌아갈 때가 됐다. 

저 때 친구 과제였나 이유가 있어서 허접한 연기하던 날 찍은 영상이다. 자연스럽게 미소 짓는 씬이었는데 누가 웃긴 멘트 쳐서 박장대소함. 아무 것도 받는 것 없는게 너무 재밌었다. 아는 사람들과 해서 그렇다기엔 글쎄 친한 사람들은 아니었고 처음 보는 사람도 있었다. 그냥 나는 늘 모든 현장을 즐거워했다. 10년 전 방송제도 공모전 준비한답시고 열심히 찍던 영상도, 단편 영화 찍는다고 새까만 색지로 벽을 메웠던 날도. 새벽같이 일어나서 해가 다 질 때 집에 들어와도 행복했다. 지금 일이 돈으로 내 노력과 시간을 대우받는다면 그 때는 보람과 재미가 전부였다.

그 때의 강렬한 기억이 너무 좋게 기억되는 탓인지 연기 배워보고 싶다. 요즘 느낀 건데 난 너무 과장된 사람 같아서. 말투도 표정도 행동도 어느 것 하나 진실된 마음이 느껴지지 않는 기분이라 다른 사람인 척 행동하다 보면 교정되지 않을까 기대가 된다.
나는 연기를 진짜 배울 것인가...!